쓰밤n김남열
“이거 보십쇼 피가 나오는 방향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건 분명 악마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오늘도 한 장 드리도록 하지요.”
인제 와서 죄책감은 없다. 어차피 면책권도 쌓일 만큼 쌓였다. 아마 몇 명 더 죽여도 충분할 테다.
“집행관님. 아랫동네에도 악마가 둘이나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내일 집행할까요? 시간 끌면 도망갈 게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당장 가도록 하지요.”
악마 같은 건 없다. 그저 내키는 대로 골라 죽이기만 하면 될 뿐. 수도원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한 게 악마 사냥을 시작했을 때부터였으니,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그들에겐 규칙이나 법칙보다 권력을 지키는 게 소중하니까.
#권력
첫문장n최현수
“이보게, 김 씨. 그러고보니 자네 이번 달 관리비가 밀렸다던데?”
“뭐요? 밀리면 밀린 거지, 밀렸다던데는 뭐요. 관리인은 당신이잖소.”
“아니, 이게 그러니까 간접화법이라는 건데, 상대방이 방금 그렇게 사람 목을 댕겅, 하고 잘랐는데 그럼 관리비 밀렸으니까 빨리 입금하라고 재촉해도, 되는 걸까 해서.”
김이라고 불린 남자는 그 말에 관리인을 노려보았다.
“난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 절단면을 보세요. 수도에서 나만큼 잘 자를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아니, 알지. 그래서 사형수들이 자네만 찾잖나. 고통 없이 한 번에 보내줄 걸 아니까.”
“알았소. 내 관리비는 바로 보내드리리다.”
“그래. 그럼 내 그렇게 알고…”
“어이, 김 씨. 이 자, 아직 살아있는데?”
“뭐요?”
김은 찰랑거리는 금발 사내의 말에 격노해 사형수의 머리를 향해 다가갔다. 정말 머리는 아직 살아있는지 이쪽 저쪽을 노려보았다. 관리인은 어쩔 줄 모르고 김의 뒤통수를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내 말 잘 전달 된 거지? 그렇지? 우리 집 평화는 자네 한테 달렸어?”
“이럴 리 없어. 무슨 닭도 아니고 사람이, 이렇게 목이 잘린 채 오래 살아있을 수가 없는데.”
“어찌됐든 죽어야 할 사람은 죽어야 되니까. 칼질 한 번만 더 하지?”
금발의 말에 김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건 내 미학에 어긋나는 일이오.”
“아니, 김 씨, 이보게 자네. 지금 미학 같은 걸 따질 땐가?”
“왜, 그럼 당신은. 여자도 안 만나고 맨날 보는 건 사형수들밖에 없으면서 미용실 가면 꼭 실장급 불러서 온갖 시술은 다 받잖소.”
“왜 인신공격을 하고 그러나. 그냥 칼질 한 번 더 하라는 건데. 아직 안 죽었대도?”
“잠깐만. 사형수가 무슨 말을 하려나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목이 잘린 채 입을 뻐끔거리는 사형수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왜 내가 아직 당신들 얼굴을 보고 있는 거지?”
“당신이 살아버렸으니까.”
“누가 살고 싶어 산 줄 아시오? 아니, 왜 난 목이 잘려도 죽질 않는 거야. 참 되는 일이 없네.”
“그러게. 되는 일이 없네.”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한 관리인이 중얼거렸다.
#잔인함이일상이되어버린사람들 #끔찍함속에서의당연한일상 #삶 #죽을때까지는죽은게아니다
알미트라n박준형
테스 형 그리고 태일이 형.
테스 형! 난 형한테 세상이 왜 이런지 안 물어볼래.
소용없잖아? 형도 영문도 모른 채 사약 먹었는데 뭘.
태일이 형! 형 50주긴데 난 이번에도 참석 안 했어. 왜냐면 형 덕분에 많이 바뀐 건 사실이지만 아직 멀었거든.
힘든 사람들 여전히 많더라고. 결과도 못 내고 중간보고만 하기는 부끄러워서 그래. 언젠가는 꼭 참석할게.
슬프게 가신 형님들 안 찾고, 사람들이 형님들 기억에서 잊을 정도로 변화한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게 진짜 바라는 거 맞지?
미안한데 정말 그렇다면 내가 형들 앞에 떳떳하게 서려면 한참 걸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직 사회에 기여한 게 너무 없거든. 변명을 좀 하자면 그래도 날마다 꾸역꾸역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딛는 중이야.
애써 외면하지 않고, 잊지 않도록 간신히 노력하고 있어. 나도 뭐라도 하고 싶은데 참 뜻대로 안 돼서 괴로워.
잔인한 말인데 어쩌면 아직도 누군가의 희생이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어.
사회를 제대로 바꾸기엔 한 사람의 목숨값으론 너무 적게 매겨지는 게 현실이니까.
그런데 부끄러운 건 내가 점차 이 구조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내가 형들처럼 희생되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는 거고.
그러니까 죽은 사람 붙들고 도와달라고 하긴 진짜 미안하고 면목 없는데
거기서 날 좀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줬으면 좋겠어. 제발.
#선지자 #희생 #의미 #죽음 #갈망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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