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문장n최현수
호미질을 하느라 날이 저무는 지도 몰랐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주인나리께서는 좋아하시겠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다.
-다들 어딜 가버린 거지?
시간 되면 어련히 함께 돌아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모두들 개인주의다. 물론 나도 만만치 않다. 저번에 여기 어딘가에 군고구마를 묻어놓았었는데…….
그렇게 멍하니 걷던 나는 하늘에서 군고구마보다 조금 더 큰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노동에서도 해방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중 몇몇이 이렇게 일을 마칠 때 쯤, 석양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석양보다도 눈부신 물체를 보고 난 뒤 미쳐버렸다고들 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무의식중에 난 홀로 남아 있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한창 호미질을 할 때 제시카가 옆에서 내내 고함을 쳤던 것 같기도 하다. 정 많고 착한 제시카…….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될 것이다. 그녀의 결혼식에 미친 하객은 필요하지 않을 테지.
고구마보다 컸던 물체는 점점 커졌다.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뜻이겠지. 난 그게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봤다. 그리고 물체 안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내려오는 것도 봤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긴 해도, 이게 미쳐가는 과정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인 듯한 것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난 그제야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네, 주인나리.
#무언가를발견한사람 #노동이끝날 무렵 #오늘은뭔가가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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