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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번 사진 × 함께쓰는 밤

함께쓰는 밤 전시장/쓰밤4 (2020)

by LucWriter 2021. 5. 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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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번 사진

 

 

 


 

 

 

은비n장은비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뭐랄까. 너는 내게 그런 느낌이었어.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많이 긴장했어. 잘 보이고 싶었는데, 나는 고작 2년도 채 못 춘 사람이었거든. 추는 건 너무 좋아하지만, 더 이상 늘지 않는 실력에 화가 나고 속상해하고 있던 찰나였지. 하루 종일 누구랑도 제대로 못 추고 내 춤실력을 탓할 즈음에, 아마 너랑 춤을 췄을 거야. 그것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빠른 곡에 췄는데 결국 난 제대로 못 췄어. 그게 너무 속상한 거야. 너는 이미 갖춰진 사람인데, 내가 괜히 민폐가 된 것은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많았지. 그 이후에 내게 홀딩 오지 않는 걸 보고, 아 나는 안되는구나 하고 속상하면서 집에 갔던 걸로 기억해. 그래서 썩 좋은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아. 이제 더 이상 춤도 추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날이었기도 해. 집에 가는 길에 조금 울기도 했던 것 같아.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마지막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곳에 들어갔는데, 네가 있더라고. 겁먹었어. 맞아. 내 춤은 무료했고, 지쳤으니까. 어떻게 춰도 힘이 드니까, 여기서도 안된다면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어.

 

막상 여기서 한 달 정도 있다보니, 네가 편한 거야. 그래도 안면식이 있다고 나 나름대로 너한테 의지를 했던 걸까. 신기하지. 그래도 여전히 춤추기엔 내가 부족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네가 내 눈에 자꾸 아른 걸렸어. 사실 처음 보았을 땐 그저 잘 안 맞는 리더일 뿐이라고 여겼었었지. 그냥 많은 사람들 중 재미없는 한 사람이었었던 거 인정해. 그래서 별 관심도 없었어. 이 무리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하는 것에 신물이 나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언제부터 마음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샌가 당신을 의식하고 있더라고. 당신과 잘 맞는 팔뤄가 되고 싶었나 봐. 다시는 뭐를 열정적으로 하지 않겠다 생각했던 그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었던 거지.

 

여기 와서 시작했던 연애는, 나보다 술을 더 좋았던 사람과 했어. 본의 아니게 상처가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지. 그런 사람과 사귀기로 했던 나는 술 대신 춤을 선택했었어. 그 사람이 술을 먹는 동안 춤을 추고 보란 듯이 앙갚음을 해준다는 심보였는데, 어쩌면 나는 술보다 춤이 더 좋았나 봐. 고주망태가 되고 사지 육신이 만신창이가 될 거라면 차라리 내 몸에 무언가 습득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혼자 스스로 해내는 그 길이 맞는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해도 늘지 않았지. 나도 알아. 언젠가 빛을 발하겠거니 하고 했던 일이니까. 단지 더 재미있어 보이는 척도 해보고, 그 사람보다 훨씬 이 춤이 더 재미있다고 일부러 그런척도 했어. 춤을 향한 나의 관심을 어디 한번 돌려봐라하고 내심 바랬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해. 결국 그 사람은 그러지 못했고, 나는 더 이상 내 연애사가 왈가왈부 되는 이곳에서는 사랑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어.

 

그 이후엔 누가 좋아져도 마음은 비치지 않는 것, 들키지 않는 것,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어. 행여 내 마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된다면, 그것은 부담 이상의 것이 되어버릴 수 있으므로 곁에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고 여겼지. 사랑은 바라지도 말 것. 저 사람은 내게 필요한 것이 있을 뿐, 사람의 사랑은 믿지 말아야 했어. 나를 꽁꽁 싸맸어. 춤을 오래 추려면 내가 다치면 안되니까. 왈가왈부 될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사람 많은 곳은 피했고,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게 힘들더라고. 알게 모르게 말하지 못할 상처들이 이미 많이 쌓여있었나 봐. 나는 나를 지키는 일이었을 뿐인데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연애하는 법을 잊어버렸나, 설레고 좋아하는 법을 잊어버렸나 싶은 거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좋아하는 마음 정도는 얼마든지 표현하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변해버린 걸까 싶었어. 춤을 추는 것 모두 사람을 좋아하니까 하는 행위인데, 사람이 무서워서 이렇게 피해 다니는 내가 힘들더라. 그래서 용기를 냈던 날이야. 약간의 성실함을 버리고 사람을 택하는

 

날이었지. 그날 너도 그랬나 봐. 자주 불참한다던 네가 같이 가겠다고 하니 사람들 반응이 의외여서 난 놀랬었거든. 덕분에 너를 잘 볼 수 있었어. 너와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네가 치는 그 기타 소리, 웃을 때 생기는 눈가의 주름, 춤추면서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 없이 춤만 췄단 이야기, 좋아하는 댄서의 이야기 등등 듣는 동안 너만 보이더라. 집에 가서 잠을 자도 눈을 떠도 일을 해도 연습을 해도 온통 너였어. 웃는 얼굴. 내 편이 되어주던 다정함. 세상에나.. 이 균열에 비집고 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얼마나 간절했는지 넌 모를 거야.

 

기회가 닿아, 한 주 더 같이 보낸 그날은 결국 균열에 대한 대가를 얻은 날이야. 너는 완벽히 예뻤고, 더 가까웠어. 내가 너를 저 먼 발치에서만 바라보듯 그저 다 같이 즐기는 자리였지만, 몇 주를 그렇게 내 삶에 끼어들어서는 그날은 아예 대놓고 내 눈에 너만 보이더라. 바보같이 그랬어. 네가 좋아졌구나. 술기운이 아니구나. 종교가 무슨 소용이며, 학력이 무슨 소용이고, 네가 머리가 큰 게 더 멋있어 보이고, 세상 모든 게 다 괜찮고 이해해 주겠다는 마음이었지. 설령 외계인이라 할지라도 좋아하겠구나 싶었어. 당신의 눈엔 어쩌면 내가 바보 같아 보이겠구나. 잘 보이고 싶었는데, 잘 보이지 못하겠구나. 속상하기도 하고, 기타 등등 만감이 교차해버렸지.

 

맞아. 나는 지금, 네가 모르는 사랑을 하고 있어. 이렇게라도 뱉어내면 포기가 될까 싶어서 하는 소리야. 말하고 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때도 있잖아.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거든. 우리가 마주할 일이 많이 생기지 않으면 마음이 가라앉겠지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아. 꼭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겠지만, 어떻게든 못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두려운 거야. 정말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인연이면 어쩌나 걱정하고 조바심이 나는 거지. 내가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감도 안 오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네가 무척 좋은데,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직 우리 친해지기엔 서로 너무 낯가리니까.

 

2억 광년을 건너온 그 사랑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했을까. 인내하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했을까. 한아가 그 고백을 거절했다면, 살아온 환경을 버리고 날아온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했을까. 자꾸 그런 생각을 해. <지구에서 한아뿐>에 나오는 경민이랑 한아처럼 우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잘 안되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고민하나 봐.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나는 이런 고민만 하고 있다는걸,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예쁘고 아름답고 반짝거리는 너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네가 가진 다른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데 말할 수가 없네. 난 이미 너로 인해 반짝거리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언젠가 늦지 않은 때에, 이 마음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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