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뱅이n김은정
기적이란 것은
타인에게 그리고 멀리서
보았을 때 쉽게 알아챈다.
어루만질 수 있을 정도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저
타인의 기적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내 곁의 기적을
마뜩잖아 할 뿐이었다.
#타인의기적 #질투의시선 #부러움
첫문장n최현수
“어머, 와이프, 저것 좀 보오. 베르사체 신상 아니오?”
“아니에요. 부끄러우니까 그냥 좀 가세요.”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요. 우리가 우산이 없어 이렇게 한 우산을 쓰고 가는 것도 아닌데.”
“제가 방정맞은 그 입을 또 열어놓았네요. 영원히 닫아버리고 싶다, 정말.”
“아니, 잠깐. 방금 지나간 남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보긴 또 뭘 봤다 그래요.”
“아니, 글쎄, 와이프, 내가 입만 열면 허튼소리를 하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진짜요.”
“뭐가 또 진짜고 가짜예요?”
“지나가버렸으니 확인을 시켜줄 수가 없구려. 우리, 저쪽으로 걸읍시다. 저 사람하고 한 번 더 마주치게.”
“내가 다시는 당신이랑 외출을 하나 봐요.”
#유쾌한오후 #한가로운산책
알미트라n박준형
검정, 흑, 검은색.
이 색은 나와 인연이 깊다.
검정은 오행으로 수(水)를 의미하며 겨울을 상징하는 색이다.
나는 사주에 수가 없어서 검은색으로 소지품을 맞추란 말을 종종 듣는다.
우스운 건 저 말을 듣기 전부터 내 주변은 검정 일색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거다.
우선 내가 가진 옷이 대부분 검은색 계통이다.
지갑도 검은색, 탁상시계도 검은색, 이어폰도 검은색,
휴대폰도 검은색. - 내 휴대폰은 아무리 바꿔도 색은 언제나 같다.-
염색 한번 안 한 이 머리카락도 몇십 년째 검은색.
심지어 내 골동품 중고차도 검은색.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통념적으로 검정은 죽음과 소멸의 부정적 느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부, 권위와 세련미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그런데 나는 부도 없거니와 권위도 없으며
하다못해 내가 입은 검은색은 우중충한 색처럼 바래서 옷맵시조차 살지 않는데
왜 난 검은색에 집착하는 건가.
첫 직장은 제조업체를 다녔는데 상사 한 분이 술좌석에서
나랑 죽이 퍽 잘 맞았던 동료 선배들과 나를 보더니
"너희는 삼원색(RGB)이야. 너가 R, 너는 G, 그리고 막내인 너- 그게 나였다.-는 B다."
다음으로 다녔던 직장에선 각자의 명함에 다른 색깔을 입혀 줬다.
난 처음 보는 디자이너 분께 대뜸 내 이미지랑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로 명함을 입혀달라는 짓궂은 주문을 해 봤다.
혹시 내가 예상하는 것과 다른 답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리고 나는 검은색 명함 200장을 얻었다.
사실 난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다만 그냥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색을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할 생각이다.
"검은색이요! 그래도 다음에 차를 살 땐 꼭 빨간차를 사고 싶네요!“
#검정 #검은색 #상징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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