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n장은비
이건 가장 한국적인 선이야.
길을 가다가 위를 올려다보면 문득 보이는 형상은 나무의 푸르름이거나, 파란 하늘 위로 올라온 전선들의 향연이었다. 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엔가 전봇대가 있고 전봇대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유독 그곳에 꽂혀 이 많은 선들은 어디로 연결될까. 이 선들이 향하는 곳들은 어디인가 했다. 프레임 안에 차곡차곡 담긴 선들의 나열이 때로는 좋기도 하고 때로는 왠지 짠했다. 전선이 유독 많고, 전봇대에 여러 가지 조형물 및 중계기들이 달려있을수록 어째서인지 오밀조밀 살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였고, 각각의 집으로 떠나는 선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괜히 찌르르했다.
선들이 겹쳐 하늘을 칼로 잘라내듯 겹쳐진 사각프레임 안의 하늘들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직소퍼즐은 내게만 있는 듯 했고, 누군가의 노력으로 잘 맞춰진 퍼즐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날들도 있었다. 그럴때면 내 주변에 누군가가 있어서 꼭 나를 도와주고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중심을 잘 갖추고 각 가정으로 뻗어있는 선들의 굵기가 다를때면 각자에 대한 마음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유독 좋아하는 사진, 가장 많이 찍는 사진, 한국에서 찍었다면 왠지 전봇대의 일부가 사진 속에 있어야 할 것 같고, 하늘을 찍는다면 어딘가 전선 한구석은 꼭 나와야 하며, 하늘이 예쁜날에는 역시 전봇대가 같이 찍히는 게 예쁘다고 생각하는 요즘. 내게 이 구도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준 그가 보고 싶다. 건물과 건물이 연결하는 선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건물과 전선이 가진 매력을 이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벽에 가득한 매립되지 못한 도시가스 배관을 보고, 그것은 정말 특별한 아름다움이야 하고 말해주던 사람.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사진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고 싶다. 그가.
#전선 #독일사진작가 #전기줄
첫문장n최현수
내가 누군가와 얼마만큼 연결되어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핸드폰 연락처를 확인하거나, 메신저 앱의 친구들을 확인할 때가 그렇다.
새로운 누군가와 선을 연결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유지보수가 중요하다. 마음 같아서는 머나먼 타지에 있는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게 힘들 것이라는 사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내가 아직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에 좀 더 노력을 쏟는다.
점검은 늘 그렇듯 지루한 면모가 있다. 새롭게 뻗어가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었던 것들이 잘 있었는지 안부를 묻는 그런 행위니까, 지루하리만치 평안한 기분을 반강제적으로 맛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서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아서, 혹은 알고 있는 심산이라서, 내 반응에 상대가 어떤 반작용을 해 올지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연결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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