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n장은비
차가워진 공기, 가을
올해의 여름은 부쩍 여름 답지 못하게 보냈다. 뜨거운 태양을 마주한 날들보다 습한 공기와 빗속을 거닐었던 날들이 많았다. 푸른 초록과 연한 파랑의 하늘을 함께 보던 시간 대신 빨간 우산의 살대의 개수를 세면서 이 계절이 끝나면 이 비도 끝이 날까 하고 생각하던 날들이었다. 게다가 전염병이 창궐한 슬픔과 날씨의 우중충함이 합쳐져서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기분이 싫어져,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랐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제는 좀 살만해지지 않을까를 기대하면서 매일을 그랬다.
갑작스레 마주한 가을은 즐길 수 있을까 싶다가 가을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여전히 도시 곳곳에 창궐한 이 병세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모두의 희망이 되었고, 봄도, 여름도, 집안에서만 보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 간절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또 이해하게 되어버린다. 단순한 계절의 변화로 인한 잦은 재채기와 콧물인데도 불구하고 설마 내가 그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들어서 걱정에 빠지지 않게, 이 확실한 계절의 변화도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여름이 올 때도 그렇게 걱정했는데, 가을이 올 때도 그렇게 걱정하게 된다. 걸리면 걸리라지 하던 단순한 감기는 매년 잘 지나갔으면서도 전염병 앞에서 약해지는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유독 나의 안위보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큰 사람이구나 깨닫게 된다.
어느새 그렇게 금방 떠나버렸는지. 여름이었던 날들이 자연스레 가을로 바뀌고,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들이 곧 오겠다.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목을 축이던 우리는, 선선한 밤공기에 가락국 수한 그릇 시켜두고 소주를 먹다가, 어묵탕 앞에서 사케를 기울이겠다. 간밤에 비가 내릴 땐, 빗소리를 들으며 지난 옛 애인 생각도 한번 하다 잠들겠지.
그 평범한 일상을 다시 되찾고 싶다.
우리가 다시 작은 행복들을 누리고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평범한일상 #코로나싫어 #가을 #여름은다가고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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