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n장은비
항상 그렇게 외로웠던 시간들이었지. 새삼스러울 필요 있을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말 한마디에 한 명은 실망했고, 한 명은 실망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스물세명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고, 스물세 명 중 몇몇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으며, 그중 또 몇몇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이야기해 주지만, 막상 내가 나를 돌아보았을 때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발언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상대에게 내 사정이 이러했고, 우리가 한 말은 그런 말이 아니야 라고 이런 마음을 이야기해봤자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그 사람은 내게 실망한 것인데, 내가 어떻게 거기다 핑계를 대도 이미 실망한 사람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백번 잘해도 한번 실망하면 마이너스 백이 되는 상황. 이미 실망했는데,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하루 종일 퍼져버렸다.
오늘의 일이 단순한 말의 와전으로 인한 불편감이었을 뿐, 특별히 잘못했다고 볼 수가 없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 사람이 보기에 속상했던 부분이면 그건 속상한 일이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사과는 했지만 상대가 대충 얼버무리는 것은 아닌지, 그사람이 바라보는 나는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 사람은 아닌지 자꾸 돌아본다. 되새김질한다. 한마디 한마디 더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게 칭찬도 반대도 아닌 그냥 공감의 언어였을 뿐인데, 그 공감이 되려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되고 불편을 주며, 실망할 일로 만들어 버린다는 건 몹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기분, 상상 속에 존재하는 행동,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어차피 나 혼자 느끼는 소속감일 뿐, 피드백 없는 관계 속에 나는 왜 허우적거렸나. 그렇게 홀로 외로이 있던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언젠가 다 떠날 것이고 머무르지 못할 거란 걸 너무도 잘 알면서도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나도 그 무리 속에 함께하고 싶었다.
그들만의 세계에 나도 소속되고 싶었던 게 본심이다. 그러나 우리라는 이름과 울타리 안에 있길 바라면서, 한편으론 바라지 않았다.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사람 관계고 장점 단점 두 가지 양면성은 누구나 가진 것을 알기에, 상대의 이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친해지길 두려워했다. 반대로 상대에게 내 이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소속감이 없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서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저 사람도 완벽하진 않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친해지기 가장 좋을 때라고는 하지만, 내겐 그 과정이 두렵다. 그 과정 중에 상대가 내게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오는게 가장 두렵다. 모든 이에게 완벽하고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호의가 관심은 아닌데, 호의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나는 그런 사람이길 바랬던 것일까 싶다. 소속감이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하는가,
어찌되었든 나는 친애하던 이에게 마상을 입었다. 그리고는 한겹 더 올려세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또 한 번의 벽을 쌓고 쌓아, 다시는 보이지 말아야지 더 가볍고 더 멀어져야지. 다시는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다가가지 말아야지. 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말하지 말아야지. 내가 더 열심히 해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한다. 오늘의 나는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너무 난도질당했으니까 하고 애써 열었던 마음을 걸어 잠갔다.
#상처받은날 #마상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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