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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 사진 × 함께쓰는 밤

함께쓰는 밤 전시장/쓰밤4 (2020)

by LucWriter 2021. 5. 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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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번 사진

 

 

 


 

 

 

정뱅이n김은정

 

노을이 싫다.

붉게 탄다며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지만,

노을을 바라보면 가슴 깊이 먹먹해져온다.

 

신나고 즐거웠던 날은 그 시간이 다 했음에 아쉬웠고,

슬프고 우울했던 날은 그 시간을 써버린 것에 공허했다.

 

벌건 눈동자에 노을이 배어들면 더 붉어질 뿐 위로가 되지 못했다.

달의 장막이 붉은빛을 가리고 온 사위가 어두워질 때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졌다.

 

 

 

 

#붉은노을 #먹먹한 #공허한

 

 

 


 

 

 

너부리n이상미

 

위기다.

이건 분명 위기상황이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촬영 실기 과제를 아직 촬영은커녕 컨셉조차 잡지 못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그것도 오후.

손톱을 뜯으며 방안을 뱅뱅 돌던 그때 머릿속을 스친 건 공항 가는 3번 버스를 타면 지나게 되는 옆동네.

고도제한에 걸려 재개발이 안되면서 점점 사람들이 떠나 지금은 폐가와 폐공장들만 남아버린 마을이었다.

가자 일단 가서 뭐라도 찍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에 시간을 보니 이미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버스 탈 시간이 없어...

급한 마음에 거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고 계시던 아빠를 외쳤다.

"아빠! 나 오쇠동. 그 공항 가다 보면 있는 다 쓰러져가는 마을 있잖아 거기 좀 데려다줘"

"... 왜"

"아 과제땜에 그래. 해지기 전에 해야 한다고. 빨리. 10분이면 되잖아. 거기 버스 다니니까 데려다 주기만 하면 돼. 올 땐 내가 알아서 올게"

빤히 보다 말없이 일어서는 아빠를 보고는 내방으로 달려가 카메라와 필름을 챙겨 집을 나섰다.

 

"거기 사람 안 산다"

"그래서 가는 거야"

"괜찮겠나"

"안 괜찮을 거 없어. 어! 저기 저 삼거리에 세워줘"

 

허리까지 풀이 자란 삼거리엔 삐뚤게 세워진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꽂혀있었다.

"갈게"

나는 두말없이 내려 이곳저곳 쏘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해가지면 끝이었으니 서둘러야 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다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6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다시 삼거리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니 회색 승용차가 서있었다.

 

우리 집 낡은 승용차.

차 안엔 아빠가 앉아계셨다.

 

"할 건 다했나"

평생을 남들 열 마디 할 때 반 마디 하고 살아온 경상도 남자.

"어"

그 경상도 남자의 딸.

"그래.가자"

그 아버지의 그딸.

 

 

 

 

#오쇠동삼거리 #3번버스 #그아빠의그딸

 

 

 


 

 

 

은비n장은비

 

밤하늘에 구름을 띄워 안부를 보내요

 

얼마 전부터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선선했던 봄에도, 질척이는 여름에도 그랬다. 쌀쌀해지는 가을밤이 찾아오는 요즘도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의 정적.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가로등 불빛이 훤해 별빛마저 사라져버린 그 하늘을 자꾸만 쳐다보고 있다. 하루를 보내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고생한 내게 누군가 위로의 손이라도 내미는 기분이었다. 시달리고 분노하다 지쳐버려서 낡아버린 하루의 끝에 조용히 닿는 느낌이 좋았다. 가만히 혼자 모니터와 씨름하다가 결국 사람이 없는 시간에 뛰쳐나가 하늘을 보았다. 쳐다보고 있으면 누군가 찾아오진 않을까, 곁에서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했다. 그럼 나는 그 자리를 피해야겠지 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어떤 날은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아직은 파란빛과 붉은빛이 완연히 남아있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가 느끼는 말 할 수 없는 감정들이 차고 밀려들어와 슬퍼지는 날도 있었다. 나의 하루를 온전히 말할 사람이 없구나, 어른이란 그런 건가 했다.

 

30살이 지나 콘서트를 같이 가줄 친구가 없어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이승환 콘서트를 갔다던 그 글에 어째서인지 나는 공감하고야 말았다. 우리의 30대는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나. 뭔가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채울 방도는 없었던 걸까. 오늘 출근길에 넘어졌어. 하고 말할 곳이 없는 게 이렇게 슬플 일이었나. 고민했다. 상대방에게 편하게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상대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나 혹은 '무슨 저런 이야기까지 여기다 하고 그래'라는 말로 되받아치칠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매일의 관계를 지레짐작하고 염려한다. 피해 주지 말아야지, 피해가 되지는 말아야지. 묵묵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가겠지라고 여기면서 아무런 시도도 도전도 안 했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니 말할 곳이 없어 적기 시작했다. 요즘의 나의 쓰기는 적적함을 달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뜨문뜨문 이말 저말 적다 보니 매일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아 쓸쓸하고 서운해졌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사람에게 매달리거나 사람에게 질척거리는 내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적어도 정상인처럼 살아야 하지는 않겠나 하고 매일의 나를 잘 다독거린다. 어려운 마음이 고스란히 관계에 나타나서, 쉽게 다가갈 수가 없는 사람이 되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딘가 불편한 사람이진 않을까 생각이 생각을 물고 자라났다. 오늘의 나에게 너의 하루는 어땠니, 괜찮은 거니, 힘들었겠구나 하고 위로해 주는 건 2020년의 밤 하늘뿐이었다.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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