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루함
지루하다 -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되어 따분하고 싫증이 나다.
<<표준국어대사전>>
따분하다 - 재미가 없어 지루하고 답답하다.
착 까부라져서 맥이 없다.
몹시 난처하거나 어색하다.
<<표준국어대사전>>
김남열
[1992]
교과서를 들고 크게 말하는 게 좋았던 며칠이 있었다. 돌아온 건 조용히 하라는 말. 어쩌면 관심받고 싶었던 행동이었을지 모르는 내게 적잖은 상처였을지 모르겠다. 이후 교과서는 그저 지루함의 대상일 뿐이었다.
[1997]
중학교에 올라서도 교과서와 수업시간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블랙홀이었다.
[2004]
군대는 지루함과 따분함 그리고 귀찮음으로 가득하다.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었다.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지루함을 견디고 스스로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면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 같다. 90년대에는 망나니 같은 자식이 군대 갔다 와서 사람 됐다는 드라마도 꽤 많았다. 민방위도 끝나가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경험상 군대는 성숙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의 시간을 앞당겨 줄 뿐. 웬만해선 사람이 바뀌지 않더라.
[2007]
이때부터 지금까지 일까. 신호등을 건넌다든지, 배식을 기다린다던지, 버스를 기다린다던지 등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크게 지루함을 느낄 일이 없었다. 일상은 매번 무엇으로든 꽉꽉 채워져 있었고, 되려 쉴틈이 없을 정도였으니.
[2011]
마침 떠오른 지루함이 딱 하나 있다. 의미 없는 회의다. 답은 없고, 주제만 빙빙 돌리다 결국은 실무자에게 다 떠넘겨지는 그런 회의. 회의시간마다 바랐던 일은, 제발 회의 전에 안건 정도는 읽고 왔으면 좋겠다는 것.
[2017]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데, 틈이라는 주제에 매료된 시기는 2016~2018년 사이였다.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무엇을 기다리는 잠깐 정도뿐인데, 우리는 그 시간마저도 꾹꾹 눌러 채워 넣으려 한다. 지루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지루함을 피해서, 즐거운 시간이고자 하는 의도가 크다. 한데, 이제는 지루함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김은정
[1995]
나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내 방에 쳐들어온 동화 전집. 놀이터에 들고나가야 할 소꿉놀이 장바구니는 베란다로 밀려났고, 얼마 앉아있지도 않았던 책상 옆으로 전권이 자리 잡았다. 급한 성격 탓에 말은 빨리 깨우쳤지만 글은 그렇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 보상으로 애리얼이 아름답게 노래 부르는 디즈니 비디오를 틀어줬다. 그것 때문에 겨우 소리 내어 또박 또박 읽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옆에서 책을 읽는다고는 하지만 눈으로만 노려보고 있다. 재미없는 게 분명해.
[2005]
그때였다. sin, cos, tan 가 등장하면서 눈앞이 흐릿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육체는 교실에 앉아있지만, 영혼은 저 먼 곳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웅얼웅얼 공기 중으로 흩어져 그 형태를 알 수가 없었고, 일찌감치 잠든 친구들이 일정하게 내뿜는 이산화탄소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몇 안 됐다. 나 역시 깨어는 있지만 잠든 친구들이나 다름없었고, 흘러가는 시간의 형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면에서 달랐다.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니지만 수학 시간에는 엑스트라로서 내 소임을 다 했다.
[2020]
어른이 되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쪼개어 쓸 수밖에 없다. 첫째는 생계가 우선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도 바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게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은 폭넓은 정보를 얻고, 스스로 즐겁기 위해서다. 그중 내면의 소리도 표현할 수 있도록 들어주는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두 귀만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대화의 주제나 흐름에 관계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에 휩쓸리다 보면 멍해진다. 내게도 소중한 시간을 왜 하찮게 여기며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걸까.
문재호
[2001]
학교 다니는 게 지루했다. 그래서 땡땡이도 많이 쳤다. 학교를 아예 안 가는 건 드문 경우였고 1~2교시 티 나지 않게 째는 게 그 당시 바램. 중1과 중3 당시 수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무척 상이했던 당시. 지금은 저작권 문제로 못하는 거 같으나 한게임과 넷마블 테트리스를 즐겨했다. 부모님이 집을 일찍 나섰을 때 학교 안 가고 테트리스 할 만큼.
[2008]
군생활은 반복적인 작업/일을 많이 하기에 지루했다. 몸 안 다치고 나오긴 했으나 당시 같은 중대원들에게 민폐를 조금 덜 끼치고 무난하게 지내고 나왔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전역 후 종종 했다.
[2021]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었으나 역시 같이 놀아야 재미있다. 1회성/단발성이 아니라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지내려면 객관적으로 불필요한 고집은 버려야 했다. 그간 범한 잘못으로 인해 자기불신이 심할 때는 ‘이번 생애 망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도 어떻게 회복한다. 지루하게 지낸 지 1년이 넘었다. 그만 지루할 수 있는 계기 마련되길.
이미영
[2002]
나는 정말 작은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인천에 유명한 유치원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유치원이지만 정말 학원처럼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던 기억이 있는데, 나는 수업을 하나같이 다 졸리고 피곤해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점심을 먹고 난 후의 수업은 지루함의 끝판왕이었다. 어린아이지만 수업시간에 졸면서도 내가 이렇게 졸아도 되나 하고 피곤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는 한 어린 아이었을 뿐이었다.
[2005]
우리 엄마는 동내학원보다 이름이 있는 큰 학원을 신뢰했었다. 이왕 가르치는거 실력있는 선생님이 있는 학원으로 가서 내가 공부하길 원하셨나부다. 초등학생때부터 대성학원을 다녔는데 나는 영어수업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도 영어를 싫어했을 까'하고 생각해보면, 나는 암기가 너무 괴로운 일들 중에 하나였다.(물론 다른 과목도 암기를 해야 시험점수를 잘 맞을 수 있는 건 마찬가지..) 초등학생2학년 때 구구단을 하도 안외워서 큰언니한테 맞았나? 혼나면서 외운 기억이 있어서, 외워야 한다는 것에 엄청난 적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영어도 문장이나 문법을 외워야 활용할 수 있는 과목이었고, 암기는 반복해야 외워지는데 허구한날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하는것이 너무 지루했다. 재미도 없고 흥미도 안느껴졌다. 그래서 철없던 나는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영어선생님의 능력을 탓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남는다...
[2021]
나에게 지루함은 나의 관심밖의 영역을 배워야 하거나 시험을 봐야 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면, 요즘은 내 삶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관심영역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엇때문일까?
이상미
[1997년]
중학교 시절 친구들의 얼굴 담임선생님 성함 체육대회의 추억 같은 건 고개를 탈탈 털어봐도 떨어져 나오는 게 없다. 그시절의 나는 학교가 싫다 못해 외면할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외면하고 싶은 상태였지만 타고나기를 인간개복치로 태어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단결근이나 노는친구들을 기웃거리는 게 아닌 꼬박꼬박 개근하며 자는 거 였다.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두꺼비집 내리듯이 전원을 내려버렸다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2004년]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정말 정말 꾹 참았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기다리던 업계 거물 교수님의 수업. 바늘구멍보다 좁은 경쟁률을 뚫고 겨우 신청 성공한 수업이었는데.
기대한게 아까워서라도 졸지 않으려고 두 눈에 경련이 오게 참았단 말이다.
인간적으로 삼십 분은 지났을 거라고 생각하고 힐끗 시간을 확인해보니..
세상에 5분 지났어...
이수업을 계속 듣다가는 난 지루함에 살해당할 거고 다잉 메세지로 저 교수님 이름을 남기겠지.
꽥.
[2020년]
머리만 대면 잠이들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축복받은 순간이었는지 그걸 잃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깊은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시계 초침 흘러가는 소리만 듣고 있다 보면 더욱 무력해지고 만다.
육신은 이미 피곤함에 절어 있어서 몸을 일으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엔 HP가 바닥이고 그렇다고 누워서 멀뚱 거리기엔 건너뛰기가 되지않는 불면의 밤 실시간방송을 보고 있는 기분.
지겨움이 이길지 해 뜨는게 이길지 매일 밤이 고역이다.
[2021년]
낮에 가만히 가게에서 멍 때리고 있다 보면 이게 뭐 하는 거지 싶어 질 만큼 한심스러워진다. 그렇다고 책을 읽기도 잠시 눈을 붙이기도 불안한 공간. 쳐다보고 있진 않아도 계속 출입문에 신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건 대단히 지치는 일이란 걸 몰랐으니 이일을 시작했겠지.
시간의 틈에 끼어버린 것처럼 무료한 시간이 흐른다.
멈춰버린 시간만큼이나 내 몸도 이곳에 목줄 매듯 묶여 있는 것만 같아서 머릿속으로 생각이란 걸 시작하면 우울의 바닥을 향하기만 하는 시간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시간조차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들 있는지.
장은비: 가만히 있기
[축구시청 2시간째]
아빠가 자꾸 TV채널을 축구에만 맞춘다. 지금 웨딩피치를 할 시간인데 나는 세일러문과 웨딩피치를 봐야하는데, 비가 와서 집으로 일찍 오신 아빠가 리모컨을 잡고 축구만 보신다. 세상에서 축구경기가 제일 지루하다. 왜 공하나가지고 저렇게 많은 인원이 싸우나, 그냥 한 사람당 공 한 개씩 하면 아주 편하고 좋을 텐데 그럼 경기도 안하고 너무 좋을 텐데, 그럼 나는 세일러문과 웨딩피치와 그랑조와 지구용사 선가드도 다 볼 수 있을 텐데 진짜 초록색 바닥이 너무 싫다.
[화학수업 5분째]
명색에 이과를 선택한 나인데, 수2를 선택한 나인데, 화학수업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졸리다. 이해하는 것이 암기하는 것보다 몹시 쉬워서 수학을 선택했는데 왜 화학은 외울게 많은지 모르겠다. 원소는 왜 이리 자주 변화하고 자기네끼리 자리도 바꾸고 숫자크기도 바꾸고 그런데 선생님은 졸리고, 애들도 다 자고, 내가 이 수업을 들어야 성적이 잘 나올 텐데 어째서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 잠이 오고 또 오는데 이 잠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선생님 착하신데, 자면 안 되는데....... 뭔가 외워야할 때마다 자꾸 잠이 오고....... 또 온다……. 어떻게 하지…….
[게임 10시간째]
몬스터를 잡아도 레벨이 오르는 경험치가 얼마 안 된다. 나는 겨우 힐을 줄 수 있는 백마법사라 그들이 치고 남은 경험치를 야금야금 먹는 것뿐인데, 이렇게 죽노동을 해야 하루에 1이 오른다. 어쨌든 손은 몹시 바쁜데도 왜 자꾸 눈은 감기는 것인가.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나도 사냥에 능하려면 사실 몬스터를 직접 잡는 타격형이나 원거리 마법사 등이 되어야했는데 어째서인지 매번 캐릭터를 고르면 힐법이다. 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출근한지 7시간째]
일도 얼추 마무리 되었고, 개인적인 업무들을 마무리해야하는데 시간이 안 간다. 이상하게도 이시간이 가장 길게만 느껴지는 마법 같은 시간. 새 일을 시작하기엔 1시간은 너무 짧고, 딴 짓으로 채워가기엔 1시간은 너무 길다. 애써 오늘 살 도서목록을 만들고, 하루 업무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주 몹시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기엔 글을 쓰는 것 만한 게 없다. 그래서 그 지루함을 달래려다가 이번 주 숙제를 다 했다. 이번 주 주말은 아주 즐겁고 신이 날 예정이다. 지루함에 대해 글을 쓰고 지루함을 없애버렸다. 야호!
| #호기심_7회차 글쓰기 (0) | 2021.0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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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_4회차 글쓰기 (0) | 2021.0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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