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움
무서워하는 느낌.
<<표준국어대사전>>
무섭다 - 형용사 어떤 대상에 대하여 꺼려지거나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겁나는 데가 있다.
형용사 두려움이나 놀라움을 느낄 만큼 성질이나 기세 따위가 몹시 사납다.
형용사 정도가 매우 심하다.
<<표준국어대사전>>
김남열
[1992]
공포괴담, 공포 특급, 귀신이다... 지금 보면 개그 책이라 느낄 만큼 어이없는 책이지만, 당시에는 밤잠을 설치게 했다.
[1994]
이사 후 바뀐 초등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Y형태의 언덕이 있다. 왼쪽 갈래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오른쪽 갈래는 군대로 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다행히 가로등이 있었고 중턱부터 내리막이었지만 오른쪽 길은 가로등도 없는 데다 한참이나 더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이었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밤의 오르막은 끝없는 소실점에 먹힌다. 밤 길, 왼쪽 길로 빠르게 뛰어가지 않았다면 그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1997]
순박한 시골 아이의 중학교 생활은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웠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그뿐이었겠는가.
[2002]
가장 돌아가고 싶고, 가장 즐거웠던 고등학교 생활. 평생 질타와 눈길만 받던 내가 의외로 할 줄 아는 게 상당히 많다는 걸 깨닫게 된 시기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스스로를 감옥에 밀어 넣었던 것을. 인정받고 싶고, 실수하기 싫고, 좋은 사람이고 싶고, 손가락질받지 않는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그래야만 당당한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었다. 당당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을 텐데.
[2005]
전역이란 게 가능은 한 일인가.
[2018]
꿈 없이 살았던 적이 없었는데 모든 걸 놓았다는 해방감. 그리고 이어서 찾아온 공허함, 허무함 인생에 대한 고찰과 방황. 원대한 무얼 원하진 않아도 놓인 순간만큼은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면 잘못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 무엇보다 나를 무섭게 했던 건. 목적, 목표 의식으로부터 배제됐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쏟아지며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2020]
코로나로 잃은 시간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은정
[2002]
한 학기를 남겨두고 전학을 왔으니까, 여름이었던 것 같다. 체육이라면 곧잘 해내었는데, 그 날은 쪼람히 줄 서서 뜀틀을 뛰어넘는 시간이었다. 4, 5, 6단으로 쌓여있었고 본인이 가능한 높이에 서서 차례로 뛰어넘었다. 6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았고, 그걸 내가 해내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를 지켜보던 선생님도 연습을 마지막으로 한번씩 해보고 평가를 진행하기로 했다. 지그럭거리는 모래알들을 밀어내며 달려갔다. 두 손을 내밀어 뜀틀 위로 짚어 뛰던 찰나였다.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 뜀틀 중간에 털썩 앉았고, 왼쪽 손목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마지막 연습이었고, 실수도 할 수 있었기에 순서는 넘어갔다. 평가가 시작되어 각자 할 수 있는 높이에 맞춰 뛰어넘었다. 나 역시 뜀틀로 달려갔지만 두 발이 뜀틀 앞에 멈춰서버렸다.
[2013]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방안이 번쩍 밝아진다. 그리고 웅크려 기다린다. 천둥이 오고있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단단한 건물 안, 포근한 이불을 껴안고 있음에도 좀처럼 심장 뛰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이 작은 독립적인 공간에 소중히 여기는 내 물건들을 동생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지만 예외는 있었다. 하늘을 찢어낼 듯이 번개가 가르면 곧이어 포효하는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두근거림은 잠에 들기까지 오래도록 지속됐다. 비가 내리고 번쩍이는 순간은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빠 등 뒤에 붙어 누우면 두근거림이 점차 안정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빠가 집에 없을 때는 동생의 등 뒤에 붙어 누웠다.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는 기댈 곳이 더 이상 기댈곳이 없어졌다. 멈추길 기다릴 뿐.
[2021]
커텐을 훅 잡아당겨 아침 햇살을 받는다. 무거운 몸을 쭈욱쭈욱 늘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내려선다. 물이 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 오빠가 출근 준비를 하느라 씻으러 들어간 동안 국을 데펴놓고 TV를 켠다. 소파에 앉아 뉴스채널부터 돌려본다. 아침을 차리고 마주 앉아 밥을 떠넣으며 하루 일과를 나눈다. 대화가 뜸할 쯤 뉴스에 눈을 옮긴다. 세모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다 잡혔다는 얘기였다. 좀비영화처럼 자극적인 영상은 없었으나,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기다리던 범죄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서 또 그 사랑이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일가족을 살해했다는 현실이 경악스러웠다.
문재호
[2005]
영화 쏘우를 봤는데 참 무서웠다. 같이 본 사람들은 내 반응이 재밌나 보다.
[2010]
대학교 복학이 어려워져 편입을 마음 먹었고 실패하지는 않을까 초조했다. 편입할 수 있을 만큼의 운이 있어서 다행이다.
[2021]
방송인 허지웅의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다 보면 항암 치료는 무척 고통스러워 살고 싶은 의욕을 앗아간다고 한다. 그는 극복했으나 손이 붓고 상시적으로 통증을 느낀다고 하니 노쇠하면서 맞이하는 질병 그리고 고통은 무섭다.
유양현
[초등학생]
우리 동네에는 꼬불꼬불한 제법 큰 개천이 있었다.. 그 개천에서 여름이면 친구들과 수영하곤 했는데 개천의 어떤부분은 수심이 꽤 깊은 곳이 있었다. 그 깊이가 궁금하여 선채로 숨을 참고 순간 수직으로 낙하한다. 보통은 바닥이 발에 닿아서 발로 그 곳을 박차고 위로 올라오곤 했는데 그곳은 훨씬 깊었나 보다.. 발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천 바닥이 발에 닿지 않고 오히려 생전 느껴보지 못한 차가운 물의 한기가 온 몸으로 느껴졌다. 깊은 물일수록 물의 온도가 차가운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땐 몰랐다.. 꼭 귀신이 내 발목을 잡아 당기는 것 같았다. 두려움 ~ 잘못하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겠구나~ 순간.. 아악~ 젖 먹던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얼마나 발을 흔들어 댔던지 금새 올라왔다... 그 이후로 그런 놀이는 잘 모르는 곳에서는 하지 않았다..
[중학생]
깜깜한 밤길에 귀신 만날까봐 돌아 다니는게 무섭다고 하지만 난 깨달았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것을..
[고등학생]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밤 11시쯤 야자를 마치고 집 근처에 도착해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집 문 앞에 있는 나에게 한 10m 근처에서 불량배들(삥뜯는 고3들)이 나보고 오란다. 난 그때 결혼한 누나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집이 가게여서 밤 9시만 넘으면 맨 바깥의 셔터문을 내려놓곤 했다. 그런데 그때는 하필 셔터문이 닫혀 있었다. 순간 짱구를 굴렸다. 셔터를 들어 올리고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는게 저넘들이 내게 오는것 보다 빠를까? 아님 그사이에 저넘들에게 붙잡힐까? 아무리 계산해도 붙잡힌다였다... 하는수 없이 순순히 포기하고 저넘들에게 갈 수 밖에 없었다. 안그럼 배로 얻어 터질께 뻔하니까. 나를 으슥진곳에 데리고 가더니만 무릎을 굻리고서 가지고 있는 돈 다 내놓으라 한다.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당히 없다고 했다. 실지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 넘들은 만약에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고 했다. 난 정말 없다고 했고 뒤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똥 밟았다는 듯이 재수 없다하면서 나를 그냥 가라고 보내줬다. 집에 들어가서 알게 된 일이지만 내 주머니에 꽤 큰돈이 있었는데. 난 까막득 하게 잊고 있었던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하마트면 오늘 제삿날이 될뻔 했구나. 그때 내가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아마도 다 내줬을것이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대학생]
나는 꽤 등산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도봉산의 경우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길아닌 길로 가기도 하고 바위의 홈진곳을 따라서 올라가기도하고 가다보면 어느새 정상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게 항상 즐거웠던것은 아닌것이 한번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데 더 이상 올라갈 곳을 찾지 못한 적이 있었다. 밑에서 보니 아무리 보아도 손으로 잡을 홈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쉽지가 않다. 이러다가 불상사가 나겠구나 싶기도하고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이 들려온다. 저기를 잡고 올라가면 된다고. 겨우 알려주는데로 잡고 그 고비를 넘겼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올라오는 길이 다 보이는데 아래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등산하면서 가끔씩 느끼는것이 이 바위에서 떨이지면 어떻게 될까? 까마득한 낭떠러지 끝을 쳐다 보고 있노라면 절로 아찔하다 못해 무섭다.
지금 떨어져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이내 그래 죽는것 보단 사는게 나아. 어차피 죽는 것 좀더 느끼고
경험하고 죽는게 낫겠지.
그래도 사는게 낫다는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하산한다. 힘들때면 그때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부딪쳐 보는거야 그래도 사는게 천배 만배 낫다.
[현재]
나이를 들어가면서 느끼는것이 육신이라는 것이 해들 거듭할수록 여기 저기 고장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는 말이 새삼 눈에 들어 오는가 보다. 늙은이게도 꿈과 희망을 주는게 종교가 아닌가 싶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서면 그 사람에게는 나이드는게 축복일 수도 있겠지. 참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내가 언제 부턴가 천국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면서 무신론자가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병중에 하나가 중풍과 치매인데 이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생을 마감할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생을 마치는 이런 병에 들까봐 무섭다 하지만 어떻게 해보지 못하는것이 인생인것을...
내 뜻대로 안되는것이 무섭긴 무섭다.
죽는 날이 멀지 않았을때 막연하게나마 미리 느끼고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그냥 자다가 세상을 떠났으면 바램이
다.
그리 아니될지라도 감사하련다. 지금까지 살아온것도 어딘데. 앞으로의 삶도 '덤'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살련다
이미영
[2003년 초등학생]
인천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 초등학교에 가자마자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놀다가 학교에 정말 무서운 써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빨간마스크'. 지금 생각하면 그걸 왜 믿었나 싶은데, 정말 유명했다. 빨간마스크의 힘이 얼만했냐면, 무서운만화책과 인터넷에도 떠들썩하게 할 정도였다. 그 빨간마스크귀신 때문에 학교에 못가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얼굴을 보면 입을 찢는다는 귀신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2014년 대학생]
약간의 공허함을 느끼면서 베란다에 걸려있는 옷을 보고 있었다. 근데 내가 보고 있는 그 옷이 점점 무섭게 느껴졌다. 아빠의 롱코드였던 것 같은데, 꼭 누가 데롱데롱 메달려 나를 처다보는 것만 같았기때문이다. 무섭지만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 계속 처다봤다. 아닌걸 알면서도 너무나도 싸늘한 밤하늘의 그림자였던 것 같다.
[2017년 대학생]
나는 가끔 잠은 오는데 자기 싫을 때 공포게임 유투브를 틀어놓고 자곤 했다. (잠이 잘 안올때도 공포게임을 보면 잠에 잘 잠들수 있었다.) 자고 싶지만 자고 싶지 않은 느낌을 아는가? 귀신이 나올듯 말듯한 그 상황에서의 서늘함과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의 이벤트는 내 등골을 서늘하게도 했지만 이불을 뒤집어 쓰지 않으면 등에 누군지 모를 누군가와 함께있는 것 같아 보는 중간에 꼭 이불을 뒤집에 썼던 것 같다. 아이 무셔..
이상미
[1991년]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다
현관문 밑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없는 날은 아파트 놀이터에 나 혼자 남을 때까지 뱅뱅이를 붙잡고 맴돌았다.
그렇게 모래바닥이 패일 때까지 맴돌아봐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그 불 꺼진 집뿐.
어둠이 아니라 결국 그 어둠속 밖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2014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넌 급한 일이 생겨서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둘이 같이 밥을 먹고 티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함께 웃다가
한순간 울린 전화에 너는 그 한밤중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나가버렸다.
차도 없고 전철도 끊긴 시간에.
그 밤 나는 너의 집 소파에 앉아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며 제발 내 예감이 맞지 않길 이 모든 게 내 오해이길 알 길 없는 누군가에게 빌었지만 결국 이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게 밝아오는 아침 처럼 너무 자명해서 째깍이는 시계 바늘 소리에도 흠칫흠칫 놀랐었다.
그 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운 건 나뿐이었다. 그 이별의 순간이 오지 않길 빌었던 건 나뿐이어서 슬프고 두려웠던 밤이었다.
[2017년]
학원 운전 연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엄마를 옆에 태우고 시내로 나서던 날.
보조석에 여분의 브레이크가 없다는 일이 이렇게 무서울 일인가. 마땅히 브레이크가 보조석에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뭘 믿고 운전석에만 있는 거지? 기본 옵션으로 넣어줘야 하는 거 아냐? 브레이크는 다다익선 아닙니까??
이 와중에 엄마는 점심으로 뭘 먹을건지 자꾸 물어본다.
엄마 나 지금 입이 떠들고 있긴한데 뇌를 거친 게 아니니까 자꾸 말 시키지마 주댕이 혼자 떠들고 있는 거야 순대 국밥이고 칼국수고 나는 뇌가 멈춰서 알지를 못해요오 알아서 정하라고 쫌!
아 제발 내가 제일 앞에서 신호대기하게 하지 말아 줘요
누구든 좋으니까 내 앞에 있어주세요 제발요
저는 시방 한 마리 위험한 짐승이에요 네발 짐승이 핸들을 잡고 있는 거라구요 이거 도로교통법 위반인 거 아닙니까?
그날 점심으로 뭘 먹었냐고?
당연히 아무 기억도 안 난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날 리가.
장은비: 남자사람
[초등학생]
남자가 무서웠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한 개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 의문이 가득했다. 데이트가 무엇인지 몰라서 이상했다. 저 남자라는 생물을 유심히 쳐다봐야겠다. 돌다리를 백번 천 번 두들긴다. 왜 나를 따로 보자 그런 거지?
[중학생]
이제 좀 감이 왔다. 아, 연애라는 건 좋아하면 해도 되는 바운더리가 커진다는 게 연애구나. 그럼 나는 어떤 사람과 연애하게 될까. 사실 근데 아직도 남자가 좀 무섭다. 툭하면 와서 장난질해대는 놈들도 그렇지만, 난 내 짝꿍도 무섭다. 힘이 대폭발할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짝꿍은 수업시간에도 짜증이 나면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될 대로 되라 어디한번. 이런 마음인가보다. 짝꿍이 책상을 쿵치고 번쩍 일어나서 소리를 지를 때가 가장 무섭다. 화가 난 이유도 모르겠지만, 화를 왜 책상에게 내고 그냥 나가 버리는 건가. 나는 너무 무서운데.. 네가 책상을 내리치면 내 쪽까지 진동이 오는데.. 소리치는 건 시끄러운데... 갑자기 그러니 깜짝 놀라기도 놀래는데 의기소침해진다. 아, 그리고 여러모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봐 내심 무섭다.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걸까. 나를 싫어하진 않을까?
[고등학생]
나름 연애라고 하고 있는데, 내 남자친구가 일진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저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무수히 많은 친구들이 인사를 하고 간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으로 시작되는 말들이 굉장히 센세이션하다. 덩치가 큰걸 알지만 일진이라고?? 근데 나는 일진 아닌데 어쩌지. 어째 나는 이런 인사들이 굉장히 무서운데, 남자친구는 그냥 일상인가보다. 나 참……. 나는 쫄보라고 이 자식아.
[대학생]
연인이 군대를 갔고, 오해가 생겨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연애랄 것도 없지만, 그가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던 게 생각이 나서 몇 개월을 전전긍긍했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말할 수 없어 말하고 싶은데 미쳐버리겠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언니의 절친의 도움으로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닿았다. 부대 앞에 가서 외박을 끊어달라고 시위할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군 입대 시험을 보다가 떨어지니 쳐들어갈 수도 없어서 너 인마, 야 인마 버럭버럭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사실, 마음은, 내 연락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그를 곤란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나 혼자 이러고 있는 것일까 봐 무서웠다. 전화를 끊고 바들바들 오들오들 거리던 내 마음과 불안함과 거친 생각들을 다독이느냐고 한 시간을 길에 멍하니 서있었다. 누군가와 화해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오해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라 더 그렇다. 한통의 전화로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지르는 말들은 책임의 무게를 견뎌야 해서 정말 많이 버겁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직장인]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날 안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거절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더 이상 연애를 못할 줄 알았는데, 연애도 곧잘 했고, 좋아하는 사람과 잘 사귀기도 하면서, 간혹 싸우고 나면 정말 무서웠다. 이제 나를 떠나겠지, 나에게 실망했겠지, 나는 그럼 혼자가 되는 걸까. 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할까. 풀지 못하면 우린 이제 끝인 걸까. 그렇게 영영 이별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등등의 무수히 많은 생각들로 긴긴밤을 지새우며, 혼자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혼자 울고불고 혼자 두려워하고 혼자 잠 못 드는 밤을 지내고나니 새벽녘 와있는 문자. "만나서 이야기 좀 해' 라는 남자친구의 말이 가장 무서웠다. 올 것이 왔구나.
[현재]
과거가 참 지리멸렬하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하구나 싶다.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나는 나에게 자신이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지금은 뭐 나는 나에게 자신이 있나 싶으면 자신이 있다가도 없다가도 왓다 갔다 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연애를 하지 못할까봐 결혼을 하지 못할까봐 그런 나를 내가 사랑해주지 못하는 시점이 올까봐 무섭다. 악몽의 연속이다. 누군가 찾아와 꿈을 마구 헤집고 가서 번쩍 깨고 나면, 파르르 떠는 마음과 몸을 안정시키는데 꽤나 오래 걸린다. 추운날씨가 아닌데 왜 자꾸 추운 것 마냥 오들오들 거리는지 버거워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다. 이 모든 두려움이 사라져야, 남자가 무섭거나 하지 않을 텐데, 쫄지 않을 배포를 키울 수 있을 텐데, 나는 늘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이 다가오면 의심하고, 사람이 떠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돌다리를 두들기듯 사람을 맨날 두들기기만 한다.
| #설렘_5회차 글쓰기 (0) | 2021.08.22 |
|---|---|
| #두려움_4회차 글쓰기 (0) | 2021.08.22 |
| #자신감_3회차 글쓰기 (0) | 2021.08.22 |
| #신나다_1회차 글쓰기 (0) | 2021.08.22 |
| 함께쓰는 밤 시즌 2021-2 소개 (0) | 202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