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나다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
<<표준국어대사전>>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
<<우리말샘>>
김남열
[1989]
시골집 주변을 누비벼 산기슭 후벼 파고, 도랑에서 개구리 알 쿡쿡 찌르던 시절.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형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동네 구석구석 뛰노는 시간은 언제나 신났다.
[1994]
집에서는 유독 말이 없던 어린 시절. 그늘져 어두운 책상 밑 공간에 쭈그리고 누워 책 읽는 시간이 신났다. 하루는 형이 만화책 20권과 셜록홈스 2권을 빌려온 적이 있는데, 작은 공간에 처박혀 반나절 채 지나지 않아 읽어낸 기억이 있다. 책을 대여한다는 것 자체도 생소했고, 집에 있던 셜록홈스 책과 다르게 컬러로 된 삽화가 있던 이유인지 아직까지 머릿속에 남아있다.
[1998]
오락실의 최고 흥행 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 다양한 게임 중에서도 격투 게임을 좋아했다. 슈팅, 퍼즐, 횡스크롤 게임 장르에 상대적으로 방법이나 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플레이에 매료됐었다.
[2003]
대학교 신입생. 무엇이 신나지 않을까.
[2008]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들고 어려운 대학시절이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시간들이 소중하다. 당시 실험실에 같이 공부하던형과 프로젝트 준비하던 시간이 제일 신나는 시간이 제일 신나는 시간이었는데, 힘듦에 대한 상대성으로 받은 건 아니었을 거다. 아직도 그 시간이 되풀이되길 바라는 거 보면.
[2010]
직장생활 시작과 함께 만난 새로운 사람들. 직장뿐 아니라 여가를 위해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모든 게 바뀌었다. 그중 제일 신났던 건 주말에 운동하는 시간.
[2019]
페스티벌에 푹 빠져있던 2019년, 평생 만났던 사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과 아직 관계를 이어 오는 것도 신나는 일인데, 역시 페스티벌에서 가장 신나는 것이라면 내가 무얼 하던 어떻게 놀던 눈초리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김은정
[1995]
1년을 기다려온 날이다. 오로지 이날을 위해 그렇게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았다. 극비사항으로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있었는데, 궁금해하던 엄마에게 며칠 전 토로하고 말았다. 비밀을 지켜주겠다던 엄마를 믿고, 마카레나 춤 연습에 전념했다. 오늘은 그 춤을 선보이는 날이다. 인디언 옷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어두운 가운데 엄마,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놀라서 우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무대에 마주 선 선생님을 따라 마카레나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불이 켜지면서 산타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유치원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려왔지만 달려나가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이런 게 경외감일까, 우린 조용히 산타 할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두진 유치원 친구들 메리 크리스마스!” 어깨에 짊어지고 온 꾸러미 속이 궁금해 우리는 쭈뼛쭈뼛 산타 할아버지에게 다가섰다. 산타 할아버지는 모두 착한 어린이라며 칭찬해 주었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선물을 주었다. 내 이름과 동시에 산타 할아버지가 꺼내든 선물을 보자 확신이 생겼다. 포장지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인어공주가 맞아!!
[2021]
비 오면 안 좋은 날, 화창하면 좋은 날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지나온 경험들이 연쇄적으로 꼬리를 무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산을 들고 걸어야 하는 날 하필 두 손을 쓰면 비를 후두둑 맞는다.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우산을 접고 다가서면 마침 앞사람이 카드를 잘못 태그 해 기다리는 동안 비를 더 맞는다. 애써 손질해놓은 앞머리는 비로 젖어 구불거리고, 버스를 타면 우산으로 다리를 쓸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종아리와 양말이 젖고, 약속 장소 가는 길에 이미 기분이 축축해진다. 비가 오면 외출이 수고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무래도 별 수 없다. 살다 보니 날씨만큼이나 감정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람이다. 우산으로는 정수리만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약속을 취소하기가 어려워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상대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터졌다. 비에 젖은 꼴이며, 다음에 보자 할걸.. 말 못 하고 나온 것이 마치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감성, 비슷한 생각, 비슷한 관심사 그렇게 부드러운 결을 이루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한다면 날씨도 상관없더랬다.
[2009]
인생에서 대인관계가 가장 폭발적으로 터지는 때가 아닐까. 학교나 학원 친구, 선후배까지 거기서 거기인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시기에는 제한이 없었다. 읍내 나가도 놀 데 없다며 방학에도 집으로 가지 않던 순천 친구, 외국인 노동자들 보는 게 일상이라던 안산 친구, 마산은 옛날 도시고 요즘에는 창원이라던 언니, 바다 가까워 좋겠다는 말 제일 싫어하던 인천 친구. 철원에서 군 생활했다던 복학생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웠으며, 무해한 관심을 주고받았다. 누군가 술 마시고 춤춘 일은 두고두고 웃을 일이 되었고, 안주 가성비가 좋은 술집은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어야 했다. 그 안에는 부동산이나 주식, 연봉 같은 숫자 대신 과팅 에피소드, 동반 입대에 관한 고민, 축제에서의 해프닝, 연애가 시작되기 전 설렘을 안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문재호
[1998]
체육시간이나 방과 후 공을 차기도 했으나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게 가장 신났다. 조이스틱을 움직이면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들. RPG와 슈팅, 아케이드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으나 대전 게임을 제일 즐겨했다.
[2000]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첫 연애를 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고 동네에서 논 기억, 여자친구와 논 추억만 남았다.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나고 훗날 스물 한 살 즈음 밥을 먹었을까 영화를 같이 봤을까. 볼 일 보고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길에 친구한테 무도회장 가자고 전화가 왔는데 이 녀석 목소리가 전 여자친구에게 들릴 정도로 커서 약간 무안했으나 그 친구가 들은 티를 내지 않은 게 문득 기억난다. 재밌게 논 기억, 추억을 떠올려보면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2011]
대학교를 편입했다. 고등학생 시절, 대학 새내기 시절 청춘사업이 내역이 형편없었으나 소개팅이 잘 되어서 인지 이 해에 오랜만에 연애를 했다. 순한 친구였다. 함께 했던 순간순간이 여전히 제법 애틋하다. 벌써 10년전이라니.
유양현
[1978]
초등학교시절 여름 방학때만 되면 동네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한답시고 갓 자란 아카시아 나무를 잘라 껍질을 벗기고 나무 칼을 만들고 서로 무예를 겨루듯이 칼싸움이란걸 이패 저패로 나눠 신나게 했다. 냇가에 가서는 곱디 고운 모래사장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땡볕에 더우면 물 속으로 뛰어들어 첨벙 첨벙 수영하며 신나게 아무 생각 없이 놀았던 것이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루 종일 놀아도 지겹지 않고 마냥 그렇게 즐겁게 방학을 다 보냈던것은 나와 똑같이 놀기 좋아하는 동네 친구들이 있었으니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 그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하루 종일 놀아도 아무 부담이 없었던 그때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지 않나 싶다.
[1986]
사귀던 여자친구와 여의도공원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롤러스케이트를 함께 탔다. 몇번 타보지 않았던 터라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엉덩 방아를 찧고 여기저기가 얼마나 아프던지... 그래도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었던지... 그건 아마도 여친의 마력때문? 아무튼 즐거웠다.
[1999]
우연찮게 IMF때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라는 데서 5개월 정도 근무하게 되었다. 그래 미국에 언제 또 오겠냐 라는 생각에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샌디에고 등 유명한 여행지를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그중에서도 신나게 놀었던 것은 라스베가스에서 슬롯머신 앞에 앉아 밤새도록 게임을 했다. 도박에는 원래 소질이 없어서 베팅이 작은 단위의 슬롯머신을 했는데 밤새도록 해도 도대체가 끝나지 않았다. 잃을 만하면 뭐가 터져서 다시 얼마를 보충하고 또 잃고... 결국에는 약간 잃은 정도로 마무리했다. 돈 십만원에 그런 쓰릴을 느끼며 신나게 놀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것 같다.
[2019]
꼭두 새벽에 서해안 어느 항구에 낚시배에 몸을 싫고... 다짐을 한다. 오늘은 반드시 대어를 잡아보리라....... 남들은 다 여기저기서 잡는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한마리 못잡고.. 미끼만 바꿔가던중.... 손끝에 느껴지는 이 묵직함... 속으로 느끼는 감탄 그리고 희열.... 얼마나 기다렸던지... 와! 바로 이것이야.. 이것때문에 다들 낚시를 하는구만..... 이런 손맛을 보기위해
이상미
[1990년]
일요일이다! 일요일은 늦잠을 자도 혼나지 않고 이불속에 누워 디즈니 명작만화를 볼수있다. 맨날 일요일이면 좋을텐데!!
[1999년]
2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 매점앞으로 달려가면 딱히 약속하지 않았어도 보노보노가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책정된 가격인지 알게되면 못먹지싶은 팔뚝만한 왕꽈배기가 500원.
딱10분. 500원이면 세상 부러울게 없었던 보노보노와 너부리.
[2008년]
분명 내가 처음이다.
리프트를 잡아준 스탭이 나랑 눈을 마주치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만국공통어다. 따봉.
오픈하고 첫리프트를 타고 산꼭대기 슬로프로 올라가는중이다.
자꾸 다리를 동당거리게 된다. 발목에 묶인 보드가 같이 흔들린다.
어제 밤새 함박눈이 내렸고 푹신한 눈이 덮힌 슬로프는 아직 아무도 타고 내려온 흔적없이 깨끗하다.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올려도 내심장소리보다 작은거 같은데? 기분이 째진다는게 이런건가?
장은비: 취미생활
[바이올린_중학생]
약 2년 가까이 아 3년 가까이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 인생에 첫 현악기를 마주했다. 그 당시 동대문 doota 매장 앞에서 좀 논다하는 무대들이 늘 열리곤 했는데, 거기서 전자바이올린의 현란함을 처음 보았던 게 화근이었다. 소름 돋도록 미치게 예쁜 언니들이 온몸을 쓰면서 전자바이올린을 하는데 나도 꼭하고 싶다며 엄마를 졸랐다. 교회에 다행히 클래식 바이올린을 하시는 분이 있어서 운이 좋게 배우기 시작한다. 전자바이올린이전에 일단 바이올린을 켤 수 있어야하므로. 캬, 역시 한번 본 무대를 잊을 수가 없어서 그 커다란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역곡과 시흥을 오가며, 아 역시 나는 멋진 여성이야. 혼자 자아도취에 빠져 버스를 탔다. 자아도취에 빠진 이유는!! 어르신들이 메고 있는 가방의 부피가 워낙 크니까 서서가는 내게 앉아있으시니 자기가 들어 주겠다 라던가 젊은 학생이 고생이 많네, 무겁겠어. 등등의 말들을 붙여주셨기 때문이었는데,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엄청 신나했다. 마치 내가 이미 바이올리니스트라도 된 거 마냥 그렇게 살았다. 참 철없다 싶지만 역시 있어 보이는 악기가 짱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것이 내 물욕의 시발점이 된다. 장비충의 삶은 언제나 신이난다.
[드럼과 기타_고등학생]
월화수목금토일을 계속 일일일일일일일처럼 매일같이 교회를 갔다. 뭐 그 당시에 윗 학년 선배들을 붙잡고 “알려주세요.”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게 악기였으니까, 대학부 오빠들을 붙잡고, 내가 너무 배우고 싶다.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면, 일단 장비를 사오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오예! 아싸!” 하고 장비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조른다. 일단 하고 싶다는 거 안 말리는 부모님이셔서 굉장히 좋았던 게 1차겠고, 좋은 장비는 아니어도 배울 수 있을 정도의 장비를 어디서 구해오시는 것을 보며 2차로 신난다. 드럼이야 교회에 있으니 내 스틱만 사면 되는게 가장 좋았고, 기타는 아빠가 어디서 치시던 걸 가져오셨는데, 지금에서야 알지만 그 기타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기타를 중고가 2만원에 데려오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좋은걸 튜닝이 안 되어있고 줄이 끊어졌다는 이유로 헐값에 내놓은 그 사람도 참 그렇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매일을 교회에 오고가고 시간이 날 때 심심하면 타이어를 두드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쳐보겠다고 애써 뚱땅뚱땅 거렸다. 장비가 좋아서 신이난거다. 무언가를 배웠기 때문이라기보다, 장비를 얻어서. 물욕에 대한 기쁨과 환희였다. 그러니 결국 열심히 연습을 하진 않았으니 당연히 한계에 부딪혔다. 장비만 좋았고 역시 난 끝까지 해내지 않았다. 역시 어릴 때부터 장비충으로 삶을 살아왔었다. 훗.
[당구_대학생]
밤새 작업해야하는 과제 덕에 학교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다며, 사실을 말한다. 외박이 안 되는 나는 이때가 아주 최고다. 밤새 컴퓨터는 돌아가게 놔두고 일단 친구들이랑 밖에 나간다. 열려있는 당구장으로 갔다. 새벽에 당구장을 출입할 수 있다니 어마무시하게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을 칭찬한다. 난생 처음 새벽에 당구를 치고 그 밤에 먹지 말아야할 금지음식인 짜장면을 먹고, 그 밤에 소주를 하는 친구들 옆에서 나는 국밥을 걸치며 새벽이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린다. 이 어찌 아니 기쁠까. 새벽녘에 먹고 놀고 마셨다. 엄청났다. 다시 학교로 복귀하고 작업을 마무리하러 들어갔을 때 컴퓨터가 뻑나서 바탕화면을 보고 우리는 어안이 벙벙하고 몹시 화가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났다. 아 하룻밤 더 놀 수 있구나. 끝내주는군!
[캘리_직장인6년차]
직장을 다닌 지 6년이 되서야 삶에 여유가 생겨서 정직원이 되자마자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다. 처음에 할 때만해도 내가 가진 글씨가 그렇게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해가 갈수록 배워가는 기쁨이 엄청났다. 놀랍게도 나의 집요함의 끝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장당 2천원이 넘어가는 종이를 거침없이 100여장 가까이 쓰면서도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종이가 없어서 더 못쓰고야 말았던 새벽녘을 보내고 잠들었던 날, 다음날 아침에 글씨를 다시 보고나니 생각보다 잘 쓴 글씨에 내가 괜히 스트레스를 받아했구나 싶어서 피식 웃었다. 이 사건이 비일비재 했는데, 아침마다 먼저 일어난 엄마가 내 글씨를 보며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고 하셨는데, 이유가 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이유라 괜히 신났다. 엄마에게 보는 눈을 길러주게 될 만큼 나는 부쩍 노력했구나. 곁에 내가 하고 싶은걸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나 멋지고 좋은 일이었음을 뿌듯하게 깨달았던 그 찰나의 순간이 매력적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어버버 거리던 순간에 엄마는 거침없었고, 그 엄마의 모습에 난 엉덩이춤을 추고 있었다.
[스윙_직장인9년차~11년차ing]
지금은 춤을 춘지 약 3년 가까이 다되어가는 직장인 11년차지만, 그 당시 춤을 추고 있으면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받고 있는 요즘, 겸손한척으로 "더 정진하겠습니다." 라고 다짐하지만, 사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니까 조심스레 신나는 감정들을 약간 일부만 표출하자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속으로 외치는 소리가 밖으로 나갈까봐 두려울 만큼이고, 어깨 뽕이 한 것 올라가서 뵈기 싫어 보일까봐 걱정하며, 그러나 지금의 이 기분 째짐은 누구라도 신이 나니까 음악만 나오면 그렇게 방방 뛰어다닌다. 아무도 내 상태를 모르겠지. 우후훗. 애는 그냥 음악이 나오니까 좋은 거겠지. 하겠지만, 3년 가까이 시간과 돈을 들이고 노력을 들이고난 뒤 결실을 맺는 기분이라 아주아주 좋다. 형언할 수조차 없을 만큼 신난다. 빵빠레를 불고 엉덩이춤을 춘다. 아 진짜 신이날 때마다 엉덩이춤이 나오면 안 되는데, 진짜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신이나 짱구가 된다. 훌라훌라 ♬ 훌라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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