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두려움_쓰밤n김남열
바늘이 들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 하는 타입이다. 주사 맞을 때 말이다. 심지어 엉덩이보다 손등 주사가 낫다고 생각할 정도다. 간호사의 “주사 놓습니다.”라는 말 후 채 1초도 넘기지 않고 바늘이 내 표피를 뚫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엉덩이 주사를 맞을 땐 그 시간이 상당히 길게 느껴진다. 바늘이 체내에 들어온 이후 아프다는 생각은 없다.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가는 도중도 그렇고. 이미 바늘이 내 몸에 닿은 이후라 되려 마음이 차분하다. 문제는 바늘이 내 몸에 닿는 찰나다. 눈으로 보고 있다면 그 시점에 정신적, 신체적 이완을 가하지만, 보이지 않을 땐 온몸의 세포들이 곤두선 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바늘을 기다려야 한다.
동아리 훈련부장을 1년간 했었다. 기초 운동을 힘들게 시키는 편이었는데, 동일한 운동량이라도 지도할 때와 지도받을 때의 힘듦 정도는 차이가 컸다. 지도할 때에도 훈련은 항상 같이 수행했는데, 심지어 지도받을 때 보다 훨씬 강도 높은 훈련도 수월히 느껴졌다. 훈련을 시킬 땐 운동 분량을 알고 있지만, 받을 땐 정확한 분량을 모른다. 시간을 정해놓고 한데도 운동 효율을 위해 중간중간 내용을 바꾸기도 하니까. 지도하는 사람은 훈련 도중에 강도 높인데도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안다. 하나 받는 사람은 얼마나 더 버텨내야 할지 알 수 없다.
불확실.
인생의 많은 순간, 불확실을 마주하며 불확실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이렇게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이 정도 스펙이면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을까? 이 정도 벌면 잘 사는 걸까? 알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 미신 따위의 믿음으로 평안을 찾으려 해 보지만 도피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확실에 대한 대안으로 과신, 망상, 자기 회피 등의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매사에 과한 불안감을 품기도 하고, 과하게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유형도 있다. 무엇이건 심리에 좋지 않다. 나쁜 일이 발생할 때면 누구를 탓하거나 본인의 부족함 때문이라 받아들이니까. 탓하는 게 나쁜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불안감 회피의 수단으로 자기 계발을 택해봐야 당장은 무언가 채워진 것 같지만, 결국 황폐한 가슴만 남는다. 삶을 재단하려 들면 인생은 더 불행하다.
불확실을 받아들이라 한다.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괜한 두려움을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고.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바늘처럼 내 몸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도 없고, 1시간만 머물다 가라며 시간을 정해줄 수도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방목해 보려 하지만 그조차 어렵다. "어떡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조차 또 다른 불확실이다. 그것이 자아내는 두려움은 정말 불확실로부터 생성되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가 조차 누구도 모르니까.
한때는 즐거움으로 이겨냈다.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던 것처럼.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예측할 수 없어서 즐겁다.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개그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는 만큼, 인생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주는 즐거움이 있다. 요즘은 기대라는 심리를 이용한다. 오늘 행했던 것들이 내일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말이다. 나쁜 결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대하는 맛이 있다.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은 아니다. 성인들은 가능하겠지만 나는 그런 방법이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희석시키는 방법이다. 불확실을 밑천으로 생성된 두려움을 기대로 희석시키는 방법.
#심리상태 #불확실성 #해결 #성격 #즐거움 #기대
공포/두려움_정뱅이n김은정
파랗던 하늘은 주황빛으로 번져간다. 철봉 밑을 파내어 쌓은 흙더미는 온기를 잃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다빈이는 무릎께 흙을 털어내고 책가방이 드러누운 벤치로 걸어간다. 가방을 둘러매자 토 냄새가 흐릿하게 끼쳐온다. 며칠 전 꺼내지 못한 우유팩이 터져버린 탓이다. 부지런히 휴지로 문질러봤지만 냄새마저 지우진 못했다. 학교 정문을 향해 발을 그륵그륵 끌며, 운동장 모래 바닥에 길고 긴 그림자를 남겼다. 담장을 따라 이어진 보도가 있지만 주차된 차들 사이로 걷는다. 그 비좁은 사잇길에서만큼은 시간도 조금은 더디 흐르는 것 같다. 해는 떨어졌고 식어버린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휑한 매무새는 다빈이의 미약한 체온마저도 바람에 실어 보낸다. 가방끈을 만지작거리던 두 손과 진작부터 굼떠진 발걸음이 문 앞에 멈춰 선다. 서너 번 올리다 내린 손은 결국 차가운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그가 있는 집으로.
공포/두려움_문재호
두렵다. 내가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지 못할까 두렵다. 내가 죽고 나서 장례식에 올 친구가 없을까 두렵다.
누구나 개성이 있으나 소속 조직에 융화하기 위해서 자신을 어느 정도 내려놓도록 타협한다. 일정 기간 동안은 그러지 않았다. 다만 더 내 자신을 고집하면 안될 거 같아서 “머리로는 내 자신을 내려 놓아야지”하고 다짐을 해도 막상 회사에서 상대방 행동을 곡해하는 경우가 왕왕 생겼다. 자의반타의반 최근 또 퇴사했다.
몇 년간 내 세계에 빠져 살았고 벗어나고자 노력한 지 근 2년. 3년전부터 근무한 회사가 6곳에 달한다. 지난 달까지 근무 마치고 다음 달 실업급여를 신청한다. 내일배움카드도 신청해서 전문성이 필요한 기술을 배울 예정이다.
지금이라도 삶의 목표, 방향 전환을 하는 게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성공보다는 사랑, 자신보다는 관계로의 전환 말이다. 아프리카 격언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라면 함께 가라”라는 아프리카 격언이 떠오른다.
공포/두려움_smile n박진오
익숙하지 않은 걸 할 때, 두려움이 밀려온다.
계속 해 왔고 잘하고 있는 건 자신 있다. 어쩌면 도도하기도 하다.
작년 봄, 나의 두려움은 글쓰기였다. 쓰다 보니 '더 잘 쓰고 싶다'는 심적 부담감마저 생겼다.
“그냥 써. 쓰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걸 얻고 있으니”
우연히 박○○ 작가 글을 읽었다. 바로 공감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다시 쓸 힘을 얻었다.
“그래, 그냥 써 보자. 쓰다보면 되겠지, 뭐.”
처음처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글을 쓰며 긴 여름을 보냈다. 가을이 왔고 겨울이 오면서 자신 없는 분야를 휘젓고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이 편했던 것들과 멀어져 있었다. 이 책 저 책 마구 읽고 있었고 생각도 정리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나를 잃어버릴까 봐, 무서워졌다.
‘이런 게 엄습하는 두려움, 공포인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일기장을 들춰 봤다. 객관적 입장에서 나를 보려 노력했다.
“내가 나를 알기란 쉬운 게 아니구나.”
내게 주문을 외듯 외쳤다.
“솔직해지자, 내게 솔직해지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냥 그대로 나를 대하자.”
어쩔 수 없이 내 전공과 친숙했던 분야로 눈을 돌렸다. 가장 먼저, 수학을 찾았다. 대부분 학생들이 두려워하며 포기하는 수학이 내게는 안식처고 평온함을 준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따듯하건만, ‘어찌해야 하나.’
수학을 거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학생들은 왜곡된 눈초리로 수학을 비판하며 수학 때문에 마포 대교에 간다고 협박한다. 죽음 앞이기에 움츠려든다. 살려야 하기에, 생명을 위해 수학을 잠시 내려놓기도 한다. 정면 돌파하기 두려워 조금만 강조(언급)한다.
물러나 있었지만 내게 솔직해지고 나를 인정하면서 내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나도 나답게 살아야 하잖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며. 그리고 모두 자기 방식대로 살고 있잖아.”
근래, 전 세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COVID-19다. 나 역시 외적 자극으로는 코로나가 가장 무서웠고 내적으로는 글쓰기였다. 글 쓰는 자체도 다양한 분야를 향한 갈망도 모두 부담스러웠다. 신입이 아무것도 몰라 주춤하며 어리둥절 소심하게 주변을 살피듯, 그렇게 글을 썼다. 알고 보면 다른 분야도 내 관심사고 좋아한다. 낯설어 두려웠을 뿐이다. 낯설음이 공포가 되기 전에 내게 편안했던 분야도 쓰기로 한다. 스티븐 킹처럼 기본을 지키며, 김정선처럼 마음을 활용하여 극복하기로 한다.
극복한 후엔 두려움 없이 쓸 날을 기대하며, 익숙하고 친숙한 일상 속에서, 오늘은 휴식을 취한다.
공포/두려움_보석57n박진희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혹은 얼어붙어 버린 것만 같은 느낌. 극도의 불안함과 긴장감이 나를 삼켜버린 것만 같은 기분. 갑자기 차원이 분리된 느낌.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 함께 찾아오는 왠지 모를 좌절감과 패배감.
전혀 반갑지 않은.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 감정은 내가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불쑥 나를 찾아온다.
생각보다 자주,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을 통해서, 혹은 어떤 사물을 통해서. 때로는 어떤 상황을 통해서, 아니면 내 마음 속에서.
두렵다는 건 무엇일까. 나를 두렵게 하는 건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가. 두려움을 느끼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최면에 걸린 듯 깊은 생각에 빠진다.
생각의 끝에 도달하였을 때 명확한 답을 얻었던 적이 많지는 않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는 기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 안에 있던 자그마한 용기와 열정, 씨앗 같은 희망이 소리를 내어줄 때.
다만, 왠지 모를 불편한 느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버린 느낌. 부끄러움. 분노감. 이런 감정들이 두려움 대신 등장하여 다시 감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적이 많지만.
이 친구와 이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은 이제는 알았다. 버선발로 마중 나갈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친구가 나를 찾아온다면 최대한 차분하게 맞이하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대화를 나누어야겠다.
이 친구와 그리고 나 자신과.
공포/두려움_너부리n이상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러 빙 둘러 가곤 했다.
밀어줄 사람 없는 그네와 함께 탈 사람 없는 시소에 앉아도 보고 가만있는 뱅뱅이를 괜히 돌려도 보면서 해가 좀 더 지기를 기다렸다.
제발 현관문 아래 틈 사이로 거실 불이 켜져 있길 바라면서
가방끈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배에 힘을 주고 머리를 한껏 바닥으로 붙여서 현관문 틈으로 빛이 보이면 큰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날듯이 뛰어 들어갔다.
엄마! 나왔어!
그날은 편히 잠들 수 있는 그런 날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가방끈을 움켜쥐고 배에 힘을 주어 고개를 숙여봐도 현관문 틈으로 거실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날은 그 문이 그렇게 크고 무겁게 보일 수가 없었다.
가방을 던져놓고 이불속에 몸을 만채로 곧 방문 밑으로 서성거리는 발 그림자와 그 너머로 쏟아질 고성들을 기다리는 시간들은 오로지 내 어린 심장소리와 움켜쥔 이불만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저 그림자가 멈추고 내일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밤
그런 밤들은 유독 길게, 느리게 흘러갔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가라앉아 질식할 것처럼.
#두려움 #그림자 #질식 #가출 #학대
공포/두려움_은비n장은비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JUST DO IT">
얼마 전 나이키의 “JUST DO IT!” 이라는 문장을 한글로 변환해둔 그림을 보았다. “그냥 해!” 라고 외치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조차 없었다. 그냥 해. 앞뒤 볼 게 뭐있어. 일단 질러봐야 아는 게야. 일단 해봐야 수정하는 거 아니야? 써봐야 어떤 글인지 알지. 그냥 일단 해보라고 수도 없이 내게 외쳐댔다. “그냥 해!(JUST DO IT!)” 해봐야 사랑도 알고, 해봐야 영상도 다룬다. 글도 써본 놈이 계속 쓴다. 춤을 추는 게 즐거운 건지 알려면 일단 춰봐야 한다. 존버의 법칙은 그냥 하는 사람들이다. 일상처럼, 꾸준하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해내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런데 왜 그리 망설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 것일까.
살면서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마도 그 때문이겠다. 이렇게 꾸준히 하는 행동이 나에게 어떤 미래로 다가올지 두렵기 때문이겠다. 우리가 계획대로 꾸준히 행하며 착실히 살아간다고 해도, 이 계획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을 꾸준히 행함으로 날리는 기회비용의 것들이 무엇인지 따지다가 하지 않음으로 귀결할 때가 많다. 온전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계산할수록 번번이 두려움이 앞선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늘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내일로 미루게 되는 일들이 그렇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도전이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새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겠다. 전자기기를 새로 사서 각종 프로그램들을 배우는 것부터, 하물며 공인인증서의 갱신으로 인해, 우리의 개인정보를 다른 곳에서 인증을 받아야하는 상황까지도 두려움이 앞선다. 잘 모르는 무지로 인한 세금신고는 또 어떤가. 잘 모르니까 잘 해결되지 못할까봐 하는 두려움 속에서 늘 살아가게 되고, 그런 시대의 흐름이 어느새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다. 삶이란 게 꼭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나이를 먹었다는 핑계를 대고야 만다.
한주동안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단어를 쥐고 두려워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 역시도 두려움이었겠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발견한 공유된 그 문장이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나가보기도 하고, 집에서 끄적거리며 책을 읽기도 했다. 나가서 무언가를 하면 행여 내가 감염병에 걸리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한참을 집에 있던 시간들을 이제 청산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 무수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2020년이 그냥 지나갔다고 말하기엔, 그 와중에도 이 감염의 두려움과 끝나지 않은 지루함속에서도 뭔가를 시도해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이다.
자 그럼, 다시 나에게 돌아와 질문을 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까. 이미 정답이 나온 질문에 대답하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가. 2021년의 쓰밤이 나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좋은 매개체가 되어주길 바란다.
JUST DO IT. 그냥쓰자.
공포/두려움_복이끄미n최광복
알록달록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든 세상이 짙은 무채색으로 뒤덮여지는 밤. 그 밤 속에서 아이는 혼자 떨고 있었다. 이내 잠들지 못하고 이불 속을 뒤척였다. 다행히 아이에게는 오렌지 과즙처럼 빛나는 공간이 있었다. 어미가 새끼를 품기 위한 둥지처럼 세상 그 어떤 위협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의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했던 몸과 마음은 한 여름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짙은 무채색의 밤을 무서워했던 아이에게는 두려운 것이 있었다. 오렌지 과즙처럼 빛나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공간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그 아이에 눈에서는 수도꼭지가 고장 난 듯 물이 쏟아져내렸다.
공간은 아이가 세상으로 나갈 때까지 가만히 머물러주었다.
공포/두려움_첫문장n최현수
정신을 잃기 전에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하게 해주겠다고. 다만 조건이 있는데, 그건….
문제는 거기까지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무얼 해왔는지, 어디에 살았었는지, 누구와 함께했었는지 역시도 몽롱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나이를 알 수 없는 여자아이-어쩌면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만이 여기에서 내가 발견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니, 유일한 생명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녀는 몹시 무뚝뚝하고 차가워서, 좀처럼 말을 건넬 수 없는 상대였다. 때문에 난 그녀와는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이러한 환경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방 안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열 때마다 확신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 글을 쓸 수 있다. 그 말은 즉, 이제 글이 엉터리로 뽑혀 나오더라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정도의 쾌적한 환경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움직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내게도 가끔은 기분전환을 위해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저택인지 호텔인지 알 수 없는 이 공간을 걸어 다니다 보면 여지없이 그녀와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눈을 마주쳤던 것은 첫날, 쓰러져 있던 나를 그녀가 경멸하듯 내려다봤을 때뿐이었다. 마치 내가 끔찍한 무언가라도 된다는 것처럼 구는 그 태도에 기분이 나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식사나 세탁, 시설관리 전반을 그녀가 맡고 있을 게 분명했다. 왜 내게 이렇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 무료로 노동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고, 또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이곳에는 그녀와 나 뿐이었으므로-왠지 모르게 난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난 이곳에서 묘한 것들에만 어쩐지 확신하고 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나 또한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메모장에 포스트잇이 몇 개 붙어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글을 주문한 것이었다. 확실한 독자가 있는 글을 쓰는 일은 막무가내로 습작을 하는 것과는 달랐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나는 노트북을 열어 주문자를 위한 글을 완성하기 위해 타이핑을 했다.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하고자 하는 일이며, 내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차 소리 없이 바깥에 두고 가는 음식들이며, 거의 방 안에 있다시피 하는데도 어느새 새것으로 바뀌어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바깥을 걷다 보면 종종 누군가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들이 내 생각들을 좀먹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난 조건 없는 이 쾌적한 환경에 불안해진 것이었다.
며칠만 더 이런 평화로움을 누려보고자 방 바깥의 세상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여자아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지금껏 대화다운 대화를 시도해본 적은 없었다. 그녀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모든 궁금증을 풀어야만 할 것 같았다. 뭐든 결심을 했을 때 단번에 하지 않으면 그것이 잠재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가 줄곧 나를 괴롭히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난 주방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기운 없는 모습에서 왜 분노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재빠르게 걸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죠?”
“나한테 뭔가 할 얘기 없어요?”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계속 가만히 서 있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아야 뭐라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겠어요?”
“내 방에 식사를 가져다주는 게 당신인가요?”
“식사뿐이겠어요? 여기엔 당신이랑 나 말곤 아무도 없어요.”
“그럼, 왜 그런 일을 하죠?”
“왜라뇨? 정말 묻고 싶은 게 ‘왜’인가요? ‘언제까지’가 아니라?”
그녀는 속에 대단한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차가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나로서는 그녀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 같으면 지금이라도 방으로 돌아가겠어요.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쓰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방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 눈빛이 무얼 말하고자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뒤로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서 온통 그녀에 관한 생각만을 했다. 그녀가 내게 그러한 태도를 지닌 이유. 그리고 날 경멸함에도 계속해서 양질의 식사를 가져다주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어쩌면 알 것도 같았다. 어렴풋이 누군가와 그러한 약속을 했었던 것이 기억이 나는 듯도 했으니까.
그녀와 말을 섞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는데, 그 뒤로 방 앞에 놓인 음식들을 볼 때마다 식욕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만들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다지 손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음식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방은커녕, 건물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적거리더라도 음식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그렇게 정해져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렇다. 지금에야 비로소 확신이 들기 시작했는데, 난 여기에서 의식주에 관한 모든 활동을 그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조건이었다. 이렇게 빌어먹도록 쾌적한 환경의 정체 말이다.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아니, 불가능했다. 역시나 그렇게 정해져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벗어나면 무언가 끝나버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녀 말대로 난 그저 시간 낭비하지 않고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포스트잇을 확인하고 글을 쓰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난 며칠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메모판에 포스트잇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메모를 붙여놓을 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특정 숫자 이상으로 포스트잇은 더는 늘어나지 않았고, 난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난 유일하게 이곳에서 살아있는 존재를 찾아 다시 방을 나갔다. 그러다가 서재처럼 보이는 한 공간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A4용지에 프린트된 글을 읽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쓴 글들이었다.
“꽤나 자기 고백적인 글들이네요. 이런 양식이 언제까지 유행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지금껏 내가 쓴 글들은 전부 그녀가 읽고 있었던 것일까.
“왜 그걸 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죠?”
“왜라뇨? 그런 약속이니까요. 기억 안 나세요?”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재 한 켠에 놓여있던 하얀 물체를 손에 받쳐 들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처음에 난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점차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 빌어먹을 확신 말이다.
“당신이 원하는 일을 원 없이 하게 해줄게. 다만.”
그녀가 나를 노려봤다.
“당신 인생에서 당신을 가장 증오했던 사람과 단 둘뿐인 세계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고. 그런 제멋대로인 약속에 승낙해버린 건 당신이잖아요? 난 불가항력이었어요.”
“그럼, 왜, 아니, 언제까지 이게 계속되는 거죠?”
그 말에 그녀는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고립 #불가항력 #돌이킬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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